경제 뉴스를 보다 보면 수많은 위기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입니다.
보통 "경기가 나빠지면 물가가 떨어지고(디플레이션),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오른다(인플레이션)"는 것이 경제의 기본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 상식이 완전히 뒤집히는 기이한 상황이 있습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데,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고 경기는 바닥을 친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이 시나리오가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정확한 뜻과 유래, 왜 정부가 손을 쓸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지, 그리고 1970년대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그 공포의 실체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스태그플레이션의 뜻과 유래
용어의 탄생 (1965년 영국)
스태그플레이션은 두 가지 경제 용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 Stagnation (경기 침체):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태
- Inflation (물가 상승): 화폐 가치가 하락하며 물건값이 폭등하는 현상
이 용어는 1965년 영국 보수당의 이언 매클로드(Iain Macleod)가 의회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당시 그는 영국의 경제 상황을 두고 "우리는 지금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라는 두 가지 최악의 상황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며 이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명명했습니다.
무너진 '필립스 곡선'의 믿음

기존 경제학에는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라는 정설이 있었습니다. 실업률과 물가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이론입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는 조금 오르더라도 일자리가 늘어나고, 반대로 경기가 나쁘면 일자리는 줄어도 물가는 안정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믿음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물가도 미친 듯이 오르는데, 실업자도 쏟아져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2. 왜 발생하는가? (공급 충격의 공포)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써서(수요 증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주로 ‘공급 충격(Supply Shock)’ 때문에 발생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석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입니다.
- 전쟁이나 기근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갑자기 폭등합니다.
- 기업은 제품을 만드는 비용(생산 원가)이 너무 비싸지니 생산을 줄입니다. (경기 침체, 고용 감소)
- 동시에 원가 부담을 덜기 위해 제품 가격은 올립니다. (물가 상승)
결국 기업은 문을 닫거나 사람을 자르는데, 마트의 장바구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3. 왜 이 상황이 가장 공포스러울까? (정책의 딜레마)
경제학자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을 '난치병' 혹은 '악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모든 해결책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딜레마 상황'이라고 합니다.
①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침체 가속화)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을 거둬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대출 이자 부담이 커져 파산하는 기업과 가계가 속출합니다. 즉, 물가를 잡으려다 경제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꼴이 됩니다.
② 돈을 풀자니… (초인플레이션 발생)
반대로 죽어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지원금을 뿌리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이 생겨 소비는 살아날지 모르지만, 이미 비싼 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이처럼 '브레이크(긴축)'와 '엑셀(부양)'을 동시에 밟아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진짜 공포입니다.
4. 역사 속 사례: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고통지수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할 때 1970년대 오일 쇼크(Oil Shock)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동 전쟁과 유가 폭등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으로 인해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석유 공급을 줄이자 유가가 4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석유가 산업의 혈액인 현대 경제에서 이는 치명타였습니다. 전 세계 공장은 멈춰 섰고 실업률은 치솟았지만, 석유 파동으로 인해 물가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친 '고통지수(Misery Index)'라는 개념을 만들어 당시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를 증명했습니다.
폴 볼커의 '피 묻은' 결단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끝낸 것은 1979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Paul Volcker)였습니다. 그는 "경기가 죽더라도 물가부터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무려 연 20%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뼈아픈 고통이 따랐지만,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하며 미국 경제는 다시 안정 궤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에는 이토록 끔찍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교훈입니다.
마치며: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법
지금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의 의미와 원인, 그리고 역사적 사례까지 깊이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경제의 파도는 개인이 막을 수 없지만, 파도를 타는 법은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무리한 '빚투(빚내서 투자)'를 지양하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며, 물가 상승을 방어할 수 있는 자산이나 자신의 직무 능력(Human Capital)에 투자하는 보수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경제의 흐름을 읽고 대비하는 사람만이 위기의 터널을 가장 먼저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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